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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7월 01일
In 금요 묵상
히브리서 1장 2-3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해 7가지 사실을 말해줍니다. 1. ‘만유의 상속자’가 되시는 분(2b절). ‘만유’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만유의 상속자’는 우주만물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2. 모든 세계를 지으신 분(2c절).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장).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요한복음은 말씀해줍니다(요 1:1, 14a절). 히브리서 1장 2c절도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가 되시는 분(3a절).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은 아닙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님이 나타내셨다는 말씀입니다. 태양이 있는 곳에 태양빛이 있고 태양과 태양빛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예수님도 분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입니다(요 10:30). 4.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 되시는 분(3b절). 비슷한 말씀이 고린도후서 4장 4b절(“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골로새서 1장 15a절(“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 빌립보서 2장 6a절(“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靈, spirit)이시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제자 빌립이 예수님에게 “아버지(하나님)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요 14:9).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 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5. ‘만물’을 붙들고 계신 분(3c절). 예수님은 만물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붙들고 계십니다. 골로새서 1장 16-17절도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 ‘죄를 정결하게’ 하신 분(3d절). 헬라어 성경에는 이 말씀이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기도 하셨습니다(막 2:5-7, 10). 사람들의 죄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안 계시는데 예수님이 그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분(3e절). 하나님은 영이시고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우편’이나 좌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편’은 영광과 권세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예수님이 지금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천국에 계신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도 예수님에게 맡겼다고 했습니다(요 5:22). ‘크고 흰 보좌’에 앉아 심판하실 분도 결국은 예수님이십니다(계 20:11). 히브리서 1장 2-3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하는 이유는 성부 하나님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한 것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 즉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마 26:63, 65). 예수님은 신성 모독한 것이 아니라 사실대로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롬 9: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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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6월 24일
In 금요 묵상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 공급해 주시고,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예수님 믿는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복에 대해서는 시편 23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날 때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사랑할 때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3절을 보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우상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사랑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출 20:5).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우리를 떠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실 수 있는 삶을 삽시다.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삽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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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6월 17일
In 금요 묵상
나발이라는 미련한 자의 아내였다가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여자였습니다(삼상 25:33a). 사무엘상 25장 23-31절에 나타나 있는 그녀의 지혜는 일곱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녀는 급한 상황에서 민첩하게 움직일 줄 알았습니다(23절). 사무엘상 25장 18a절에도 그녀가 민첩하게 움직인 것이 나와 있는데, 그녀가 민첩하게 움직인 이유는 다윗이 곧 쳐들어 올 것이고, 다윗이 쳐들어오면 자기 남편 나발뿐 아니라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민첩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그녀의 집안 남자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화난 사람의 화를 누그러뜨릴 줄 알았습니다(24-25절). 화난 사람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잠 27:4a). 아비가일은 다윗의 화를 누그러뜨렸는데 그것은 그녀가 지혜로운 여자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셋째, 보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면서 다윗을 설득할 줄 알았습니다(26절). 보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윗을 설득하자 다윗은 그녀의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전달해준 아비가일도 지혜로운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다윗도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넷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 줄 알았습니다(27절). 다윗에게는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아비가일이 바른 말을 하고, 다윗에게 잘못했다고 빌었어도 다윗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지 않았다면 다윗의 화는 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 다윗의 화를 풀어주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여자입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병든 사람을 고쳐주시고 배고픈 사람을 먹여주신 이유는 그들의 필요가 채워질 때 복음에도 귀를 기울일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가 먼저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해줘야 합니다. 그 순서를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다섯째, 사과할 줄 알았습니다(28a절).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합니다. 아비가일은 잘못한 남편을 대신해서 다윗에게 사과했습니다. 화난 사람의 화를 풀어주는 방법 첫 번째는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것입니다. 잘못이 있는데도 사과하지 않아서 관계를 악화시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섯째, 다윗으로 하여금 밝은 미래를 보게 하면서 바르게 처신할 것을 요구할 줄 알았습니다(28b-31a절). 아비가일은 다윗이 왕이 될 것과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다윗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미래에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일곱째, 다윗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다윗에게 부탁할 줄 알았습니다(31b절). 아비가일은 다윗과 헤어지기 전에 자기를 기억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며칠 뒤에 다윗은 아비가일의 남편 나발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고,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삼상 25:39b-42). “나를 기억해 달라”고 한 아비가일의 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모두 아비가일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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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6월 09일
In 금요 묵상
미움과 사랑 사울 왕이 다윗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한 내용을 읽어 보면 사울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졌을 뿐 아니라(삼상 18:11) 자기 아들 요나단을 죽이려고 창을 던지기도 했습니다(삼상 20:33). 자기 맏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어 다윗을 전쟁에 내보내 죽이려고도 했고(삼상 18:17), 다른 딸 미갈을 다윗에게 주어 죽이려고도 했습니다(삼상 18:20-21). 정상적인 아버지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사울은 했습니다. 사울은 확실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울이 처음에는 다윗을 좋아해서 ‘군대의 장’으로 세우기까지 했습니다(삼상 18:5).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미워하기 시작했는데 그 발단은 사람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하면서 다윗을 사울보다 높인 것입니다(삼상 18:6-9).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으니까 사람들이 다윗을 높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울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니까 악령이 그에게 들어가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삼상 18:10). 오늘날에도 사탄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잘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워했습니다(삼상 18:12, 15, 29).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그 사람을 두려워해서 그러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인데,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다윗의 인기는 올라갔습니다(삼상 18:16, 30).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도 검찰총창이었을 때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에게 미움을 받더니 결국은 인기가 좋아져서 대통령이 된 것처럼 다윗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미움 받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미워할수록 인기가 좋아졌지만 사울은 다윗을 미워할수록 불행해졌습니다. 불행해지는 첫 걸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비교해서 질투하거나 미워하면 나만 손해고 나만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는 미움을 받았지만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에게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부터 사랑했는데(삼상 17:58-18:1) 사랑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고 선택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삼상 24:20).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것을 다윗에게 주었고(삼상 18:3-4), 둘째는 다윗을 보호해주었고(삼상 20:12-13a), 셋째는 다윗을 격려해주었습니다(삼상 23:15-17).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미워한 그 이유(삼상 20:31) 때문에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다윗 한 사람을 두고 아버지는 미워하고 아들은 사랑했으니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할 때 하나님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통해 보호해주셨고 위로해주셨으니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습니다. 사울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 되지 말고, 요나단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사랑하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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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6월 03일
In 금요 묵상
다른 사람을 낙심케 하는 것이 죄인 것을 아십니까?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하는 것은 죄인 줄 알면서 다른 사람을 낙심케 하는 것은 죄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경을 잘 보면 그것도 분명히 죄입니다. 민수기 32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으면 하는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모세가 책망하며 한 말입니다. 모세가 그들을 책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지금 다른 지파 사람들을 ‘낙심’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을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민 32:9). 40여년 전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이 부정적인 보고를 함으로 온 백성을 낙심케 한 일을 상기시켜주면서 한 말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이 한 잘못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케 한 것입니다. 40여년 전의 그 일을 상기시켜주면서 모세는 르우벤과 갓 지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너희는 너희의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난 죄인의 무리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민 32:14). 요단강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로 다른 지파 사람들을 낙심시키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모세는 ‘죄인의 무리’라고 한 것을 우리는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왜 그들에게 이렇게 혹독한 말을 합니까? 그들이 지금 다른 사람들을 낙심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낙심시키는 일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악이요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낙심시키는 줄 아십니까?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기적일 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정적일 때입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의 문제는 그들이 이기적이었다는 것이고, 10명의 정탐꾼들의 문제는 그들이 부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이기적이거나 부정적일 때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낙심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기보다는 항상 긍정적인 말, 희망적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눅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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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5월 26일
In 금요 묵상
사울 왕이 지도자로서 잘못한 것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모르지만 3천 명만 남기고 돌려보낸 것을 보면(2절) 사울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블레셋이 옆에 있으면 방어할 준비를 했어야 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에는 사도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가다가 풍랑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바울의 신분은 죄수였습니다. 배가 위기에 처하자 죄수 바울이 배 안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울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행 27:9-10, 22, 34). 지도자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에 대해 대비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잘못된 명령을 내렸거나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요나단이 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블레셋의 수비대를 쳤는데(3a절), 그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공격을 받습니다(5절). 요나단은 왜 블레셋의 수비대를 쳤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둘 중의 하나입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을 치라는 명령을 내렸던지, 아니면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에 요나단이 스스로 판단하여 블레셋을 친 것입니다. 지도자가 잘못된 명령을 내리거나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바른 지시나 명령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보고 떤 것은(6-7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보다 강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사울 왕이 떨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지도자를 바라봅니다. 지도자가 평안해보이면 사람들은 안도하고, 지도자가 두려워하면 사람들도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죄수 바울이 침몰해 가는 배 안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행 27:25-26). 넷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흩어지고 사무엘 선지자는 안 오자 사울은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8-9절). 다급한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선지자가 할 일을 대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순간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어땠을까요? 사울이 원했던 은혜를(12절)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을까요? 사울은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깁니다(삼상 15장). 하나님께 쓰임 받는 지도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이 바벨론 제국에서 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b).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사람으로 변해가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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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5월 19일
In 금요 묵상
사무엘상 9장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될 사람 사울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인데 ‘유력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1절). 아버지가 ‘유력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울이 왕이 된 것은 아닙니다. 사울 왕 다음으로 왕이 된 사람은 다윗인데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크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사사 입다(삿 11)나 야베스(대상 4:9-10)가 그런 사람입니다. 사울은 ‘준수한 소년’이었습니다(2절). 표준새번역 성경은 ‘잘생긴 젊은이’로 번역했습니다. 사울은 얼굴도 잘 생겼고 키도 컸습니다. 키가 크고 잘 생기면 좋지만 그렇지 못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잘 생긴 분이 아니었습니다(사 53:2). 압살롬은 잘 생긴 것이 오히려 불행이었습니다(삼하 14:25-26, 18:9). 사울은 착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오라고 했더니 사울은 온 동네를 다니며 찾았습니다(3-4절). 나중에는 아버지가 잃어버린 나귀들보다 아들을 더 걱정할까봐 염려했습니다(5절). 이런 것을 보면 사울은 참 착한 아들입니다. 다윗도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양 지키라 하면 양 지키고, 전쟁에 나간 형들 면회 갔다 오라 하면 면회 갔다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운 이유 중에는 이런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엡 6:1-3). 사울은 아랫사람 말도 들을 줄 알았습니다(6, 10절). 아랫사람 말 듣는 것이 쉽지 않은데 사울은 들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혜로웠기 때문입니다(잠 12:15). 대통령들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랫사람들 말이나 쓴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주는 사람들의 말은 들으면 안 되지만 바른 말 해주는 사람들의 말은 들어야 합니다(잠 15:22). 사울은 후에 하나님 말씀도 안 듣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삼상 15:2-3, 9). 그 일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았습니다(삼상 15:23). 사울은 예의를 아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아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고 뭐라도 가져가려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7-8절). 하나님은 하나님께 나아올 때도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예물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셨습니다(신 16:16-17).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도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룻을 돌려보낼 때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보리를 잔뜩 주어서 보냈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룻 3:17). 사람은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의의 기본은 인사를 잘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사환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간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10절). 사울이 아무리 착한 아들이고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도리 중에서 으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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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5월 12일
In 금요 묵상
사무엘상 3장에는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부르셔서 사용하시기 시작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대단히 좋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거의 안 하셨다는 말인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왜 말씀을 안 하셨을까요? 말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었는데,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삼상 2:12-17, 22-23, 3:13).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이 어린 사무엘이었습니다. 1절에 ‘이상’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상은 환상을 말합니다. 영어성경에는 ‘visions’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단 2:19).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도 환상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행 10:3, 9-13). 환상 외에도 여러 방법으로 말씀하셨는데 꿈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자(천사)를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고, 짐승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민 22:28-30).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고(출 19:16, 20:19, 민 12:6-8, 마 3:17, 17:5), 마음에 감동을 주심으로 말씀하시기도(스 1:1-2, 막 12:36)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셔서 말씀하신 것은 직접 하신 걸까요, 이상(환상) 중에 하신 걸까요? 직접 하신 것 같지만 이상(환상) 중에 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상 3장 1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주로 말씀하실까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시는데 성경과(눅 24:32) 성령을 통해서(눅 2:27, 행 8:29)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고, 글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고,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고, 상황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은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 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3장 2-3절도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갔다’는 말은 엘리의 육체적인 눈 상태에 대한 말이지만 그의 영적인 눈 상태에 대한 암시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눈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나빠지지만 영적인 눈 상태만큼은 나빠지면 안 됩니다. 야곱이나(창 47:27-31) 모세 같은 사람은(신 34:7) 죽는 순간까지 영적인 눈 상태가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했다’는 말도 성막 안에 있는 등불에 대한 말인 동시에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암시입니다(삼하 22:29).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대단히 나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새로운 희망을 주시기 위해 한 사람을 부르셨는데 그가 바로 사무엘입니다. 우리나라도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사무엘 같은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사무엘 같은 지도자는 어디서 나올까요? 믿음의 가정과 교회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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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5월 05일
In 금요 묵상
룻기에서 제일 중요한 내용은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는 것입니다. 룻과 보아스가 결혼하게 된 배경에는 자신들의 역할을 잘 감당한 세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나오미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결혼시키기 위해 룻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었습니다(3:1-4). 정말 좋은 시어머니입니다.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시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로 오기 전에도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나는 내 나라로 돌아갈 테니 너희는 너희 나라에서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라”고 했습니다(1:8-9a). 자신의 두 며느리를 정말 사랑한 좋은 시어머니입니다. 좋은 시어머니 되는 방법은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룻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자 룻은 시어머니가 시킨 대로 했습니다(3:5-6). 나오미가 모압을 떠나면서 룻에게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라”고 했을 때는 순종하지 않다가 지금은 순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압 남자와 결혼을 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지만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을 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로 온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1:15-18). 나오미가 룻을 시집보내려는 남자 보아스는 나이가 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룻이 순종한 이유는 하나님만 잘 섬길 수 있다면 나이 많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할 때 심각하게 생각해볼 것은 이 사람과 결혼을 해도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겠는지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룻에 비해 나이가 좀 많습니다. 3장 10절을 읽어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책임감이 대단히 강합니다. 3장 12-13절을 읽어보면 ‘기업 무를 자’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데, ‘기업 무를 자’란 가까운 친척이 어렵게 되었을 때 그 집안을 책임져주는 사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집안이 어려워지면 그 집안과 제일 가까운 형제나 친척이 그 집안을 책임져줘야 했습니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땅을 팔았으면 그 땅을 도로 찾아주어야 했고(레 25:24-25), 종으로 팔려갔으면 다시 자유인이 되도록 해주어야 했습니다(레 25:47-49a). 자식 없이 죽어서 대가 끊기게 되었으면 죽은 자의 아내와 결혼을 해서 대를 잇도록 해주어야 했습니다(신 25:5-6). 이런 것이 ‘기업 무를 자의 책임’입니다. 나오미의 집안을 위해 이 일을 해야 할 두 번째 순서의 사람이 보아스였습니다(3:12-13). 첫 번째 사람이 있었지만 보아스가 만나 얘기해봤더니 그 사람은 재산에 대해서는 책임져줄 수 있지만 대를 잇는 일, 즉 룻과 결혼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4:1-6). 그래서 보아스가 룻과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한 사람입니다. 룻과 보아스가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가 각자 자신들의 책임과 역할을 잘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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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4월 30일
교회주보(5월 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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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4월 28일
In 금요 묵상
시편 80편은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은 다윗 왕의 찬양대 지휘자입니다. 시편에는 ‘아삽의 시’가 12편 있습니다(시 50, 73-83편), 시편 80편에서 아삽은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소서’라는 말을 여러 번 합니다(3, 7, 19절). 3절과 19절의 ‘우리를 돌이켜 달라’는 말은 우리를 회복시켜 달라는 말이고 ‘우리’는 아삽의 민족, 즉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1-2절).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은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4-6절).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심으셨다”(8절)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어 가나안 땅에 살게 하신 것을 뜻합니다. 그 포도나무가 잘 자라더니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어버립니다(13절). 이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짓밟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삽은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14-17절). 회복시켜 주시고 구원해 주시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18절). 아삽은 다윗과 동시대 사람으로 그 당시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편 80편에서는 이스라엘이 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6, 13, 16절). 시편 79편도 아삽의 시인데 시편 79편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상태는 더 안 좋습니다.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시 79:1). 이 말씀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이미 멸망했습니다. 아삽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몇 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인데, 마치 본 것처럼 말하니 어찌된 것일까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삽이 하나님께서 계시로 보여주신 미래의 일을 기록한 것이든지, 아니면 아삽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사람이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기록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전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역대하 29장 30절에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런 표현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시편 80편을 묵상하다가 우리도 아삽처럼 ‘우리를 회복시켜 주소서,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라는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엄청나게 쇠약해졌습니다. 최근 국민일보에 한국교회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는데 그 결과가 참담합니다. “교회를 신뢰하십니까?”라는 질문에 2020년에는 32%, 2021년에는 21%, 2022년에는 18%로 나타났습니다. 종교에 대한 호감도는 불교가 66.3%, 천주교가 65.4%, 기독교는 25.3%였습니다. 시편 79편 4절에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한국교회의 상황이 딱 이렇습니다. 한국교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코로나 시대에 정부와 언론이 교회를 좋지 않게 보이게 만들었고,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도 본이 되는 삶을 살지못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삽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우리는 한국교회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한국교회를 회복시켜 주시고, 한국교회를 구원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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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4월 23일
In 금요 묵상
구원받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요한계시록은 ‘자백’이라는 말 대신 ‘회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계 2:5, 16, 3:3, 19). 다윗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도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했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했습니다(삼하 11장).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그의 죄를 드러내었을 때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하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데 그 내용이 시편 51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51편 말씀 중에서 4절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내가 주께만 범죄했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일까요? “내가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범죄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범죄한 것은 결국 주께 범죄한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39장 9절에서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보디발의 아내를 범하는 것은 보디발에게 죄를 짓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임을 요셉은 알았습니다. 다윗이 ‘내가 주께만 범죄했다’고 한 말도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고, 해를 끼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잘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으면 다윗처럼 회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요일 1:9).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전혀 안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죄를 전혀 안 짓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지었을 때 바로 자백하고 회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고 베드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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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4월 14일
In 금요 묵상
요한복음 19장 17-30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써서 붙였습니다(19절). 그것을 보고 대제사장들은 "그렇게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했습니다(21절). 그 말에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 했습니다(22절).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요 19:4, 6b). 예수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요 19:8). 자기 아내가 예수님에 대해서 해준 말도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라고 했습니다(마 27:19).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글을 읽어보면 빌라도는 그전에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고,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주장대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써서 붙인 것입니다. 그 말을 빌라도는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말로’ 썼습니다(20절).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면 유대인들이 쓰는 히브리말로만 써도 되는데 로마 사람들이 쓰는 로마말(라틴어)과 그 당시 가장 많이 쓰이던 헬라말로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빌라도를 통해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 상당히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메시야로 모시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비극입니다. ‘빌라도의 보고서’ 끝 부분에서 빌라도는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저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가(史家)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죽도록 내어준 비극의 순간을 잊지 못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죽어가는 그 시간에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옷을 놓고 제비뽑기 하고 있습니다(23-24절). 시편 22편 18절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군인들이 나중에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 군인들의 모습이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물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도 가끔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 하셨는데 그것도 구약성경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28-29절). 예수님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메시야라고 주장했다가 십자가에 달려죽은 분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오셨고 돌아가신 분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사 53장).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목마름의 고통을 기꺼이 당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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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4월 09일
In 금요 묵상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 공급해 주시고,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예수님 믿는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복에 대해서는 시편 23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날 때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사랑할 때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3절을 보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우상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사랑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출 20:5).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우리를 떠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실 수 있는 삶을 삽시다.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삽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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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3월 26일
In 금요 묵상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고,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일까요?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성공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성공이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비록 가난해도, 신분이 낮아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침례 요한 같은 분이 좋은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사람들이 메시야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를 소개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그는 광야에서 금욕생활을 했고, 사람들에게 회개의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향하도록 했습니다. 자기의 두 제자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요 1:37, 40).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정말 잘 감당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침례 요한은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지위가 높았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목이 잘려 죽었으니 얼마나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 대해서 말하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하셨습니다. 침례 요한이야말로 인생을 정말 성공적으로 산 분이셨습니다. 인생은 연극과 비슷합니다. 연극배우에게 있어서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왕이나 왕비의 배역을 맡는 것일까요? 부자의 배역을 맡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무슨 배역을 맡든 상관없이 연출자의 마음에 들게 연기를 잘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연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무슨 역할을 맡았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출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참된 성공입니다. 침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인생무대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들입니다. 맡은 배역이 힘든 역할이라 내 얼굴이 일그러진다 해도 연출자 되시는 하나님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면 내 인생은 결국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인생이 그랬고, 사도 바울의 인생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과 역할에 충실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눅 3:15-1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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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3월 19일
In 금요 묵상
사람에게 있어 눈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눈이 밝으면 세상이 밝게 보입니다. 운전할 때도 편하고, 책을 읽을 때도 편합니다. 반대로 눈이 밝지 못하면 대단히 불편합니다. 시력에는 육신의 시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적인 시력도 있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문맹(文盲)이라고 합니다. 육신의 눈은 떴지만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지적인 면에서도 이왕이면 많이 배워서 정신적으로, 지식적으로 밝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시력도 있는 것을 아십니까? 육신의 눈도 밝고, 지적인 시력도 좋은데 영적으로 눈을 감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그렇게 잘 알면서도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메시야가 예수님인 것을 몰랐습니다. 육신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것도 불행한 일이고, 지적인 면에서 어둡게 살아가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불행 중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영적으로 눈을 뜨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영적인 눈을 뜬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이 더 밝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육신의 시력에도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 11:35)고 하셨습니다. ‘네 속에 있는 빛’, 즉 영적인 빛이 어둡지 않나 보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적 시력은 얼마나 될까요? 육신의 눈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점점 나빠지는 것처럼 영적인 눈도 나빠지지 않도록, 아니 좋아지도록 관리를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성령의 음성에 민감함으로 우리의 영적 시력이 점점 좋아지도록 합시다. 육신의 시력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나빠지지만 영적인 시력은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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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3월 10일
In 금요 묵상
레위기 1-7장에는 5가지 제사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가 그 5가지 제사입니다. 번제는 희생제물 짐승의 모든 것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유일하게 짐승의 가죽만 태우지 않았는데 그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주셨습니다(레 7:8). 번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전인격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곡식의 첫 열매를 드릴 때(레 2:14), 짐승을 제물로 바칠 형편이 못 될 때(레 5:11), 제사장이 기름 부음을 받을 때 드렸습니다(레 6:20). 속죄제는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속건제도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제사인데, 특별히 물질적인 보상이 따라야 하는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쳤다든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았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레 5:15-16, 6:2-7). 화목제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나 서원할 것이 있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화목제물을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레위기 3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화제’(3, 5절)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화제는 희생제물을 불태워서 바치는 제사를 말합니다. 간과 콩팥, 거기에 붙은 기름을 불태웁니다. 고기는 제사를 드린 사람이 먹습니다(레 7:15-16). 고기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릴 수도 있었는데, 레위기 7장 28-38절에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화목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자가 자기 손으로 가져와야 합니다(30a절).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가슴살과 그 주변에 붙은 기름을 말합니다. 2. 제사장은 그 가슴살을 하나님 앞에서 흔들어 요제로 삼고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합니다(30b-31절). ‘요제’란 제물을 흔들어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를 말합니다. 요제로 바쳐진 가슴살은 제사장들의 몫입니다. 3.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아야 합니다(32-33절). ‘거제’란 제물을 들어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입니다. 거제로 바쳐진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를 집례한 제사장의 몫입니다. 화목제물 중에서 가슴살과 오른쪽 뒷다리가 제사장들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34절). 이런 식으로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35-36절).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성도들이 드리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통해 주의 일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도록 해주셨습니다. 그 물질은 교회를 운영하는데도 쓰이고 주의 종들이 생활하는 데도 쓰입니다. 헌금을 할 때 절대로 갖지 말아야 할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드린 헌금으로 사역자들이 살아간다는 생각입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돈을 주의 종들에게 주십니다. 성도들 중에는, 주의 일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자기가 헌금한 돈으로 사역자들이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들에게 열정과 가난의 영성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의 훈련을 시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최선을 다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매일성경, 2022/0304, 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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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3월 03일
In 금요 묵상
레위기는 다섯 가지 제사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됩니다(1-7장). 다섯 가지 제사는 번제(burnt offering), 소제(grain offering), 화목제(peace offering), 속죄제(sin offering), 속건제(guilt offering)입니다. 다섯 가지 제사 중 레위기 4장에 기록되어 있는 속죄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속죄제는 ‘부지중에’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13, 22, 27절). '고의로'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될까요?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했습니다(민 15:30-31). ‘끊어진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일 수도 있고 쫓겨난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죄의 무게에 따라 쫓겨나거나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고의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부지중에, 실수로, 우발적으로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2b, 13, 22, 27절). 그럴 때 드리는 것이 속죄제입니다. 속죄제는 죄를 지은 사람의 지위와 재정 형편에 따라 바치는 제물이 다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수송아지(3절), 회중도 수송아지(13-14절), 족장(지도자)은 숫염소(22-23절), 평민은 암염소(27-28절)나 어린 암양(32절)을 드려야 합니다. 어린 양을 드릴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비둘기(레 5:7), 비둘기도 드릴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곡식 가루(레 5:11a)를 드리면 됩니다. 지위와 형편에 따라 다른 제물을 드리도록 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시고 사랑이 많으십니다. 속죄제를 드리려고 소나 양을 끌고 오면 속죄제를 드리는 사람은 짐승의 머리에 손을 올립니다(4절). 손을 올리는 것은 죄를 전가한다는 뜻입니다. 죄 지은 사람이 죽어야 하지만 짐승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해주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사 53:5-6). 짐승을 죽인 뒤에는 하나님 앞에서 피를 뿌립니다(5-7절). 그리고 지방과 내장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릅니다(8-10절). 고기를 포함한 나머지 부분은 진영 밖에서 불사릅니다(11-12절). 우리 생각에는 고기를 번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기름과 내장을 진영 밖에서 불살라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반대로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고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피와 기름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레 3:16). 기름은 좋은 것의 상징입니다. ‘기름진 땅’ 하면 좋은 땅을 의미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피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데 피는 생명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레 17:10-11). 이런 것을 생각하면 피는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창 9:4, 행 15:29a). 기름도 마찬가지입니다(레 3:17). 속죄제는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을 예표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히 9:12). 고기와 가죽이 진영 밖에서 불살라진 것처럼 예수님께서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히 13:11-12).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면 누구라도 값없이 죄 사함 받을 수 있고 의롭다함 받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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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2월 24일
In 금요 묵상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 유대민족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을 생각하면 참 신기합니다. 유대인들의 나라 이스라엘은 여러 번 망했습니다. 기원전 586년에 베벨론 제국에 의해 망했고, 회복되었다가 서기 70년에 로마 제국에 의해 다시 망했습니다. 망했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1948년에 다시 일어났으니 1878년 만에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일어났을 뿐 아니라 지금은 막강한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 이런 민족은 없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국민은 온 세계로 흩어지고, 흩어지면 몇 십 년 못 가 언어가 사라지고 문화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1900년 가까이 그들의 언어와 문화와 신앙을 지켜냈으니 대단히 놀라운 사람들입니다. 그 비결을 우리는 시편 78편 1-8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 78편은 아삽이 기록한 글입니다. 아삽은 다윗이 조직한 찬양대의 책임자였습니다(대상 16:4-5a). 행정적으로만 책임자가 아니라 음악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대하 5:12-13). 뿐만 아니라 그는 믿음도 좋았습니다. 1절에서 아삽은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아삽이 한 말은 조상들이 전해준 것을 자손에게 전하겠다는 것입니다(2-4절). 조상들이 전해준 것은 ‘하나님의 영예와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자손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5절).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든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이 회당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은 고향에도 회당을 만들었습니다. 4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땅에도 회당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봐도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회당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에게 멸망하고 전 세계로 흩어진 후에도 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만들어 자녀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한 결과 유대인들은 그들의 언어와 문화와 신앙을 오랜 세월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민족입니다. 아삽이 하나님에 대해서 자손들에게 가르치겠다고 한 이유는 자손들이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6-8절).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자손들에게 가르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신 4:9, 6:6-7),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자손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삿 2:10).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가정과 자손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아들딸 손자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재산 물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앙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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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담임 목사님
2022년 2월 18일
In 금요 묵상
사람이 태어나서 한 평생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살기 때문에 그나마 좀 낫지만 일제강점기나 6.25전쟁을 겪은 분들은 살아가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나 6.25전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지금의 상황도 적지 않은 고통일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야곱의 삶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나이를 묻는 바로 왕에게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대답했습니다. 130년 살았으면 많이 살았는데 내 나이가 얼마 못 된다고 한 것은 조상들의 나이에 비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180년을 살았고(창 35:28)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175년을 살았습니다(창 25:7). 그런데 야곱은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자기를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해 일찍이 집을 나와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에서 살았습니다. 20년 동안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야곱은 형 에서와 극적인 화해를 하고 이제 좀 평안히 사는가 싶었는데 고난이 끊이질 않습니다. 외동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일도 있었고, 그 일로 인해 둘째 아들 시므온과 셋째 아들 레위가 디나를 강간한 사람뿐 아니라 그 마을의 모든 남자를 죽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야곱은 더 큰 고통과 두려움을 느껴야 했습니다(창 34:30).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도 있었고(창 35:19), 첫째 아들 시므온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일도 있었습니다(창 35:22).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곱이 겪은 일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은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상인들에게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는 맹수에게 물려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때 야곱이 받은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창 37:34-35). 그래서 야곱이 바로에게 “내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한 것입니다. 야곱의 삶은 결국 해피 엔딩으로 끝납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은 살아있었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기운이 소생”했습니다(창 45:27-28). 야곱이 요셉을 만나는 장면은 창세기 46장 28-30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야곱의 삶 가운데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사람은 확실히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야곱이 살기 싫다고 빨리 죽었다면 이런 날을 못 보았겠지요. 그러므로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살아야합니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습니다. 야곱이 그 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삶 고비 고비마다 나타나셔서 말씀해주셨습니다(창 28:15, 31:3, 35:1, 46:2-4).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야곱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고, 예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창 46:1, 35:3, 28:18). 야곱의 삶은 ‘험하지만 복된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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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효민

공동 작업자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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