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과 기쁨의 삶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삶입니다. 돈이 많아도, 건강해도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없다면 건강도 돈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4-7절이 말하는 평안과 기쁨의 삶을 위한 권면을 들어봅시다.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항상 싱글벙글거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살다보면 슬픈 일도 있기 때문에 항상 싱글벙글거릴 수가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슬픈 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했는데, 감옥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상황을 바라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롬 8:28).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는 말은 속으로만 관용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관용하라는 말입니다. 마지못해 관용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용하라는 말입니다. 관용해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가깝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가깝다’는 말은 주님 만날 날이 가깝다는 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의 방법으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 휴거되어 만나든지, 죽음을 통해 만나든지. 어떤 방법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 날이 가까운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용을 나타내야 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미워했다 해도 죽기 전에는 용서하고 죽는 것이 맞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 용서하면 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주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잘못한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보셨습니까? 한두 번 또는 두세 번 용서해보셨습니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한대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용서해주셨습니다. 용서하며 관용하며 삽시다.
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연말이 되면 사람들이 어떤 말씀을 온라인으로 많이 검색했는지 조사한 결과가 나오는데, 거의 매년 제일 많이 검색한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살다보면 염려할 일도 생기지만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기도할 때는 ‘감사함으로’ 하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 별일 없이 살게 해주신 것이 감사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7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무조건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도한대로 들어주시고 안 들어주시고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어떤 일로 마음에 평안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