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서는 전체가 세 장밖에 안 되는 짧은 예언서입니다. ‘요엘서’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설교를 하면서 요엘서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행 2:16-21). 사도 베드로가 첫 설교에서 처음으로 인용한 말씀이 요엘서에 있는 말씀인 것을 생각하면 요엘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요엘서를 기록한 사람은 ‘브두엘의 아들 요엘’입니다(욜 1:1). 요엘이 언제 어디서 사역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요엘이 유다의 요아스 왕 때 사역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요아스는 7살에 왕이 되었는데, 요아스가 어린 왕이었을 때 요엘서가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요엘서에 왕에 대한 언급이 없고 제사장들에 대한 언급만 있기 때문입니다.
요엘서 1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이 말씀은 과거 어느 시점에 메뚜기 떼가 모든 것을 먹어버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메뚜기 떼가 ‘다른 한 민족’이 쳐들어와서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것처럼 앗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6절). 메뚜기 떼가 모든 것을 먹어버렸기 때문에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습니다(10절). 그래서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5절). 8절은 “백성아, 울어라! 약혼자를 잃고 슬퍼하는 처녀처럼, 굵은 베 옷을 걸치고 울어라”(새번역)라고 말합니다.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으니 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즐거움’도 마르고 말았습니다(12절).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은 ‘소제와 전제’를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9절).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이고, ‘전제’는 포도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제단에서 수종드는 자들에게 “슬피 울라”고 말씀합니다(13절). 몇 년 전에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던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제일 힘들었던 것은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메뚜기 떼로 인하여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는 상황이 되니까 제일 가슴 아픈 일은 하나님께 소제와 전제를 드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다른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길 수 있는 것 자체가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큰 비극과 슬픔을 당한 유다 사람들에게 요엘 선지자는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14절). 우리도 어려움을 당하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코로나 때도 다른 곳은 몰라도 교회는 모이게 해주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도록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그 반대로 했습니다. 다른 곳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교회에 대해서만 유독 더 못 모이게 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메뚜기 떼의 재앙을 보면서 ‘여호와의 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15절). ‘여호와의 날’은 세상 끝 날에 있을 심판의 날입니다. 메뚜기 떼의 재앙을 보면서 ‘세상 끝 날에 있을 심판’을 본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기근과 홍수와 지진과 전염병을 보면서 우리는 장차 있을 ‘대환난’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마 24:6-8, 21).
메뚜기 떼의 재앙과 함께 극심한 기근도 있었습니다(16-20절).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신 28:38-42). 나라가 잘되고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신 28:1-6). 우리나라가 복을 받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