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묵상(칼럼)_38년 된 병자에게 임한 은혜
요한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 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데스다 못은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있던 못입니다(2절). 예루살렘 성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는데, 양문은 예루살렘 성의 북동쪽에 있었고, 성전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양문은 ‘양의 문’이라는 말인데, 양들이 주로 지나다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또는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베데스다 못 주변에는 많은 병자들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베데스다 못의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던지 낫는다는 전설 내지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4절). 베데스다 못의 물이 한 번씩 움직인 것을 보면 베데스다 못은 간헐천이었던 같습니다. 간헐천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뜨거운 물이나 수증기를 뿜는 온천입니다.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간헐천이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베데스다 못가에는 많은 병자들이 있었고 그들 중 한 사람이 ‘38년 된 병자’입니다.
이 사람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사람이 병 고침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베데스다 못의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낫는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사실이라 해도 이 사람이 제일 먼저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에서 그곳에 와 있었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6절).
예수님이 이 사람을 보니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고, 예수님의 질문에 그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7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원하는 것은 물이 움직일 때 물에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낫기 원하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셨고, 그는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8-9a절). 그에게는 베데스다 못이 ‘은혜의 집’이 되었고 ‘자비의 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못의 물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렇게 되었습니다. 베세스다 못의 물을 통해 은혜와 자비를 경험하기 원했지만 베데스다 못가에서는 치열한 경쟁과 헛된 소망과 좌절만 경험했고, 진정한 은혜와 자비는 예수님을 통해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이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해 놓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38년 된 병자는 죄로 인해 죽어가는 이 세상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만든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종교입니다. 베데스다 못가에서 물이 동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병자들은 종교를 통해 구원받으려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못의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병 고침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고 소망 일 뿐 사실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종교를 통해 구원받으려는 사람들의 믿음과 소망 또한 그렇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병 고침 받은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였던 것처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요 3:16-17, 14:6, 행 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