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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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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묵상 칼럼_ 그 날에 부를 찬송

이사야서에서 제일 짧은 장은 12장입니다. 이사야 12장은 ‘그 날에 부를 찬송’에 대한 내용입니다. 1절과 4절은 “그 날에”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그 날’은 천년왕국 때를 말합니다. 12장 앞에 있는 11장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2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너’는 천년왕국에서 살게 될 이스라엘 사람들을 말합니다. 새번역성경은 1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 날이 오면, 너는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 전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진노하셨으나, 이제는 주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나를 위로하여 주시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도 1절 말씀과 같은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2절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 말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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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묵상(칼럼)_임마누엘

  ‘임마누엘’ 하면 제일 먼저 마태복음 1장 23절이 떠오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또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한 이유는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오시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인용한 말씀은 이사야 7장 14절입니다.

  이사야 7장은 유다의 아하스 왕 때 아람과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쳐들어오는 내용입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쳐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유다의 요아스 왕과 백성의 마음은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습니다(2절).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3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4절). 아람과 이스라엘이 일을 벌이지만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5-7절). 이스라엘은 65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8-9a절). 이 말씀이 있고 나서 이스라엘은 12년 뒤인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을 벌였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람과 이스라엘의 머리는 그들의 인간 왕이었지만, 유다의 머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람은 이스라엘보다 10년 빨리, 기원전 73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9b절에서 하나님은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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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묵상(칼럼)_입다의 인생역전

사사기 11장에는 사사 입다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 입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인간승리’, ‘인생역전’입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1절). 좋게 표현해서 ‘기생’이지 사실은 ‘창녀’입니다. (새번역성경은 ‘창녀’로 번역했습니다).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멸시받으며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입다는 결국 배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2절). 그런데 이 입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다. 11절에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았다”고 했습니다.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존경받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자라다 보면 성격이 비뚤어지기 쉽습니다. ‘나는 인생쓰레기야. 나는 잘될 수가 없어. 나를 멸시한 인간들,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사사기 9장에 나오는 아비멜렉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겠다고 자기의 배다른 형제 70명을 죽였습니다. 아비멜렉이 그렇게 모질고 악한 사람이 된 데는 그가 첩의 아들로 자란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첩보다도 못한 창녀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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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묵상(칼럼)_적극적인 신앙생활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입니다(계 3:15-16). 차가워야 할 콜라가 미지근하고, 뜨거워야 할 커피가 미지근하다면 얼마나 맛이 없겠습니까. 교회가 미지근하다는 말은 ‘열심’이 없는 교회라는 말입니다(계 3:19). 그런데 물질적으로는 풍족했습니다(계 3:17).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면 한국교회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많은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를 닮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의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를 생각하면 암울한 생각이 듭니다. 유럽의 교회들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렇게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3장 19b절이 답을 주고 있습니다.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는 말을 저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 하라’ ‘적극적으로 교회생활 하라’는 말로 해석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 하고 적극적으로 교회생활 하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수로 보면 소극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소극적으로 교회생활 하는 분이 더 많습니다. 주일에 교회 나오는 것 외에 특별히 하는 것이 없습니다. 헌신 좀 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저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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