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장 6b-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아벨이 드린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이 드린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에 대해 가인이 분해하고 안색이 변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네가 낯을 들지 못하는 것은 네가 선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것이고,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말은 죄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셋째, 죄가 너를 원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잘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선을 행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은 말합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하는 사람이 도둑질 안 하는 방법은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을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선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죄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b). 죄를 다스리는 방법은 죄를 지으려는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9, 11). 죄를 짓지 않으려면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고,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잠언 4장 23a절은 말씀합니다.
죄를 다스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건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동생을 죽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동생에 대해 질투심이 있었습니다. 질투심은 미움으로 변했습니다. 질투심과 미움을 잘 다스렸다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는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소도둑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는 커지기 전에 다스려야 합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3:7b). 꼭 기억하고 삽시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물음에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하나님이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아담이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한 것과 비교하면 사람이 점점 악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범죄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물으시면,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요?’라고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죄는 점점 커지고 사람은 점점 악해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