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묵상
디모데전서 5장 1-2절에는 목회자가 성도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세가 많은 남자 성도를 대할 때는 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하고, 젊은 남자 성도를 대할 때는 친형제를 대하는 것처럼 하고, 연세가 많은 여자 성도를 대할 때는 어머니를 대하는 것처럼 하고, 젊은 여자 성도를 대할 때는 순결한 마음으로 친자매를 대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대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 가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또 다른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친 가족을 대하는 것처럼 하라’는 말은 친 가족을 대하는 것처럼 ‘편하게’ 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라는 말입니다. 가족들 간에 사랑하는 마음과 존중하는 마음이 없는 가정도 많지만 그런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가정은 가족 간에 서로 사랑하는 마음과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정이기 때문에 교회 가족들 간에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과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 간에도 있어야 하고, 성도들 간에도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인간관계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좀 친하다고 해서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좋은 관계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좋은 관계가 오래 계속되려면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고전 13:5).
말을 할 때도 예의를 지켜서 해야 합니다.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야’ ‘너’로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OOO 자매(님)/형제(님)/성도(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교회 자매님들 간에 ‘OOO 자매(님)’이라는 호칭대신 ‘OO야’, ‘OO 언니’라고 부르는 자매님들이 많아진 것을 봅니다. 그렇게 부르게 되면 ‘야’ ‘너’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고, 품격이 떨어진 말도 쉽게 나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OOO 자매(님)/모매님/성도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3절 이하에는 ‘과부’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과부’라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니지만 듣기 좋은 말도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부득불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교회 안에 과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6장 1절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에도 과부들이 많았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3절은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참 과부’는 연세가 많은 혼자되신 분을 말합니다. “참 과부를 존대하라”고 한 이유는 젊은 나이에 혼자된 분들은 재혼할 가능성이 높고, 재혼하면 더 이상 과부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세가 든 과부를 존대하라고 한 것입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참 과부’라고 할 수 있을까요? 75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디모데전서 5장 9절은 60세는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는데, 디모데전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수명이 오늘날보다 짧았기 때문에 60세가 오늘날의 75세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몇 십 년 전에는 60세가 노인 대접을 받았지만 요즘 60세는 중년이고 75세는 되어야 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 과부’로 존대 받으려면 살아온 삶도 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딤전 5:9-10). 존대 받아야 한다는 말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녀/손자가 있다면 자녀/손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딤전 5:4), 자녀/손자가 없고 친척이 있다면 친척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딤전 5:16).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16)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가족이나 친척 중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돕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혼자되신 분들은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합니다(딤전 5:5-6). 혼자되신 분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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