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묵상(칼럼)_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사람이 겪는 고난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질병 때문에 겪는 고난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겪는 고난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음으로 겪는 고난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들의 오빠 나사로가 병이 듦으로 겪은 고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사람이 행복하게 살다가 오빠 나사로가 병들었으니 두 자매가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래서 두 자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오빠 나사로가 아픈 것을 알렸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4절)라고 하셨습니다.
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 있는 것처럼 다른 모든 고난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찾아올 때는 무조건 싫어할 것이 아니라, 이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설령 하나님의 징계로 온 고난이라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바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약 1:2-4, 시 119:71).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바로 안 가시고 이틀을 더 머무르신 뒤에 가셨습니다(6-7절). 바쁘시면 있는 곳에서 말씀으로 고쳐주실 수도 있었는데(요 4:49-50), 그렇게 안 하시고 이틀을 더 머무신 뒤에 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크게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틀을 더 머무신 뒤에 가셨더니 나사로는 이미 죽었고,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17절). 바로 가셨다 해도 나사로는 이미 죽었고, 무덤에 있은 지 이틀이 됩니다. 이틀을 더 머무신 뒤에 가신 이유는 무덤에 있은 지나흘이 되는 나사로를 살림으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바로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기도하자마자 바로 들어주시면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기도한 뒤에 들어주시면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에 대한 기쁨도 더 큽니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바로 들어주시지 않고 천천히 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했던 곳으로 다시 가셨습니다(8절).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은 나사로와 그의 두 여동생을 정말 ‘사랑’ 하셨습니다(3, 5절). 예수님은 나사로에 대해 ‘우리 친구’라고도 하셨습니다(11절). 요한복음 15장 13-14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나사로의 ‘친구’입니다. 나사로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이기도 하십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친구입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을 친구로 두었기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친구로 두었기 때문에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들이 한 경험을 우리도 했고, 앞으로도 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