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서 3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예수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신 후에 모든 민족을 모아놓고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을 모아놓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구분하시고 판결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마 25:31-33), 그 말씀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의 골짜기’를 요엘서 3장 12절은 ‘여호사밧 골짜기’라고 말해줍니다.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욜 3:12). 여호사밧 골짜기가 어디일까요? 여호사밧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상징적인 장소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은 실재하는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모든 민족을 판결하시고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실재적인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 장소가 여호사밧 골짜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으로 재림하시면 ‘감람산은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생깁니다(슥 14:4-5a). 그 골짜기가 ‘여호사밧 골짜기’이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심판하십니다.
요엘서 3장 9-11절은 ‘모든 민족’에게 와서 ‘전쟁’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와서 전쟁을 하라고 한 이유는 그들을 멸하기 위함입니다. 11절을 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방의 모든 민족아, 너희는 모두 서둘러 오너라. 이 평원으로 모여라. ‘주님, 주님의 군대를 보내셔서, 그들을 치십시오!’” 모든 민족이 모여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쟁을 벌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쳐서 ‘심판’하십니다(욜 3:12). 요엘서 3장 9-12절은 ‘아마겟돈’ 전쟁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7년 대환난 마지막 부분에 사탄과 적그리스도가 지상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 세상의 왕들을 모아 일으키는 전쟁입니다(계 16:14, 16). 아마겟돈에 모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이동해서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슥 14:2).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도와주시고, 예수님은 지상으로 재림하십니다(슥 14:3-4a). 그때 예루살렘을 공격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계 19:15-16), 새들이 와서 그들의 시체를 먹습니다(계 19:7-21).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만(욜 3:14-16a), 이스라엘은 보호해주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욜 3:16b-17). 예루살렘은 마침내 ‘거룩’한 도시가 되고 이름 뜻 그대로 ‘평화의 도시’가 됩니다. 이때부터 천년왕국이 시작되는데, 천년왕국의 수도가 예루살렘입니다.
천년왕국에서는 유다의 모든 땅이 비옥해집니다. 땅이 비옥해지려면 물이 있어야 하는데, 물은 ‘성전에서’ 흘러나옵니다(욜 3:18).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큰 강이 됩니다(겔 47:1-12, 슥 14:8).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큰 강이 되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 이해하는데,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천년왕국에 있을 성전도 실재적인 성전이고(겔 40-47장),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실재적인 물입니다.
요엘서는 메뚜기 떼의 재앙 이야기로 시작해서(1장) 천년왕국의 소망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3장). 우리에게도 암울한 날이 있지만 천년왕국과 영원한 천국의 소망 있기에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