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할 때 북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이었습니다(호 1:1b). 북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여로보암 1세)이고, 다른 한 명은 북이스라엘의 13번째 왕(여로보암 2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13번째 왕 때 활동했고 그 때가 북이스라엘이 가장 부강할 때였습니다(왕하 14:23-28).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호세아 10장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a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이 말은 이스라엘이 부강한 것을 은유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해주신 분이 누구실까요? 하나님이십니다. 열왕기하 14장 26-2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b절입니다.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제단’은 우상에게 제사하는 제단을 말하고, ‘주상(柱像)’은 기둥 모양의 우상을 말합니다. 우리말성경에는 ‘돌기둥 우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부강해질수록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2절입니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벌할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이 우상숭배하게 된 이유를 호세아 선지자는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었다’는 말은 그들의 마음이 반은 하나님께 가 있었고, 반은 우상에게 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도 섬겼고 우상도 섬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 하는 것을 금하셨고, 우상숭배 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출 20:3-6). 어떤 형체를 만들어놓고 그 앞에 절하는 것만이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닌 무엇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재물이 많은 사람에게 우상이 될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이 없을까요?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우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은 용납하시지 않습니다(요일 2:15-16, 약 4:4). ‘두 마음’ 품는 자들을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사람도 두 마음 품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시 119:113). 야고보서 4장 8b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3절입니다. “‘우리가 주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다가, 임금도 못 모시게 되었지만, 이제 임금이 있은들 무엇에다가 쓰랴?’ 하며 한탄할 날이 올 것이다”(새번역). 주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면 나라를 잃게 될 것이고, 한탄할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왕이 죽고 나서 31년 뒤에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호세아 10장 1-3절이 주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우리가 됩시다(수 24: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