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32-38절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부류는 누가 봐도 승리한 사람들이고(32-35a절), 다른 한 부류는 패배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승리한 사람들입니다(35b-38절). 32절의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이고 대단한 믿음의 승리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33-34절). 어떤 여자들은 자신의 죽은 사람들을 부활로 되돌려 받기도 했습니다(35a절). 열왕기상 17장의 사르밧 과부와 열왕기하 4장의 수넴 여인이 그런 복된 경험을 했습니다.
35b절 이하에 나오는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35b-38절). 35b절의 ‘더 좋은 부활’은 ‘생명의 부활’을 말합니다(요 5:29). 그들은 생명의 부활을 바라보며 고난도 당했고 죽임도 당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톱으로 켜서 죽임 당하기도 했는데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그렇게 죽임 당했습니다. 히브리서는 네로가 로마의 황제일 때 기록되었는데 그때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도 그때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피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38b절)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토굴’은 땅굴을 말하는데 이탈리아 로마의 카타콤(지하 공동묘지)이나 튀르키예(터키)의 데린쿠유(지하 도시) 같은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숨어서 살았습니다.
고난 당하고 죽임 당했다고 해서 그들이 실패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순교하는 것이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일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감당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대단한 사람들이고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잘되고 못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침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라고 했습니다. 침례 요한과 사도 바울 두 분 다 목이 잘려 죽었지만 그들은 위대한 승리자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2-38절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멋진 승리를 주시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난과 죽음을 주십니다.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음 앞에서 어떤 자세를 보이는 것이 믿음일까요? 살려달라고 끝까지 매달리는 것이 믿음일까요, 아니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일까요? 저는 후자가 참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뜻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눅 22:42)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진정한 승리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