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사라져갈 때(1월 7일)

살다 보면 희망이 사라져갈 때가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7절을 보면 아브라함도 희망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낀 때가 있습니다.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이웃 왕들과 싸워서 이기고 돌아온 날 밤에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돌아오다가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 소득의 1/10을 드렸고, 또 소돔 왕을 만나 전쟁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주었습니다. 준 이유는 소돔 왕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창 14:21-24).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밤이 찾아왔습니다. 적들이 공격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자식이 없는 슬픔과 외로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b). 이 말씀 하신 것을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적들에 대한 두려움과, 전쟁에서 이기고도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라는 말은 ‘내가 너를 보호해주고 내가 너에게 상을 주겠다, 보상해주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아브라함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5장 2-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이런 투로 말을 합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을 주신다고요? 다 필요 없습니다. 제게는 자식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 자식 주실 것을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제 상속자는 이 엘리에셀입니다.” 아브라함의 말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가득합니다. 불만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한 자식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나오면 책망하셔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대신 그를 밖으로 이끌고 나가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러고는 “네 자손이 저 별들과 같이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창 15:4-5).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이 말씀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전부터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었지만 그날 밤의 일을 계기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새로워졌습니다.

창세기 15장 1-7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희망이 사라져갈 때 우리가 바라볼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방패가 되어주시고 상급이 되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앞이 캄캄해도, 사방이 막혀있어도 위를 바라보면 별들이 있고,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조회수 0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코로나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있습니다. 마스크를 계속 쓰고 살아야 하니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불편한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코로나는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도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코로나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차이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23). ‘아래에서 났다’는 말은 ‘이 세상에 속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위에서 났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속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시편 23편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말씀이 시편 23편입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의 시인데, 언제 어떤 상황에서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편 23편이 주는 감동이나 시편 23편이 가지고 있는 깊이를 생각할 때 어린 나이에 지은 시 같지도 않고, 사울 왕에게 쫓